2. 독서/1) 윌라 오디오북 추천

[윌라 오디오북 추천] 난중일기 - 이순신

힐링맨 2024. 3. 9. 18:14
728x90
 
난중일기
1,700만 관객으로 국내 영화 관객 수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 〈명량〉의 후속작 〈한산〉의 흥행으로 말미암아 영화의 원작 모티브인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진한 감동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린 충무공 이순신은 가공의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이다. 우리 민족은 5천여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을 겪었지만, 성웅 이순신과 같은 슬기로운 조상들이 있었기에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난중일기》는 명장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에 쓴 7년간의 일기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달인 1592년 5월 1일부터 그가 전사하기 전 달인 1598년 10월 7일까지의 기록이다. 일기의 친필 초고는 현재 충청남도 아산에 있는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다. 본래 이 일기에는 어떤 이름도 붙어 있지 않았으나, 1795년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를 편찬하면서 편찬자가 편의상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여 전서 권5부터 권8에 걸쳐 이 일기를 수록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난중일기》 속 정유년 9월 15일(양력 10월 25일)의 일기 내용 중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는 글귀는 마음을 비우는 삶의 자세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리고 지휘관으로서 부하를 각별히 아끼는 그의 리더십도 잘 묘사되어 있다. 을미년(1595년) 9월 14일 이순신은은 늘 곁에 있던 부하 수사 선거이와 작별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긴다. 북쪽에 갔을 때 즐거움과 고생을 함께했고 남쪽에 왔을 때 삶과 죽음을 함께하는구나. 오늘 밤 이 달빛 아래에서 한 잔의 술을 나누고 나면 내일은 우리 서로 헤어져야 함을 아쉬워하겠구나. _본문 속에서, 310p 이순신의 부하를 먼저 생각하는 리더십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었고 곧 7년의 기나긴 임진왜란에서 조선 수군의 대승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또한 이 책에는 일러스트로 보는 명량해전도, 모친과 함께 한 이순신의 효성, 거북선, 판옥선의 삽화가 담겨 있어 전략가이자 영웅으로서의 이순신의 삶을 잘 엿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풍전등화와 같은 국가의 위기를 극복해 가는 충무공 이순신의 인간적 고뇌와 리더십이 담긴 《난중일기》를 더클래식 동양고전으로 만나 보자. 閑山島月明夜上戍褸 한산도월명야상수루 撫大刀深愁時 무대도심수시 何處一聲羌笛更添愁 하처일성강적갱첨수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_충무공 이순신(1545~1598)
저자
이순신
출판
더클래식
출판일
2022.08.25

윌라 오디오북

<난중일기>

이순신 지음


나의 한 줄 요약

"영웅을 넘어 바다의 신이 된 한 인간의 일기"



 이 오디오북을 듣게 된 계기

 -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업적을 모른다면 말이 안 되지만 <난중일기>를 일기를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도 책으로 읽으려고 몇 번 시도하다가 끝내 완독 하지 못하였는데 이번에 윌라 오디오북에서 <난중일기> 오디오북이 나왔다 하여 들어보게 되었다.

 

 - <난중일기>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조선 선조 때의 무신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7년(15921년~1598년) 동안 군중에서 쓴 일기이다. 처음에는 제목이 없었는데 그의 사후에 자료들을 수집하여 책으로 엮었고 책 이름을 <난중일기>라 지었다고 한다.

 

 - <난중일기>는 1962년 대한민국의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2013년 6월 18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정식 명칭은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이다.

 

 충무공 이순신과 임진왜란

 - 이순신은 (1545년 4월 28일 ~1598년 12월 16일) 조선 중기의 무신이었다. 그의 출생지는 한성 건천동이며 그의 생가자리는 현재 서울 중구의 명보아트홀 자리이다.

 - 대부분의 성장기 시절은 이순신 장군의 외가가 있는 충남 아산에서 보냈다. 충청남도 아산에는 현재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면서 영정을 모신 현충사가 있고, 사적 제112호로 지정된 아산 이충무공 묘가 있다.

 

 - 문반 가문 출신이지만 1576년(선조 9년) 그의 나이 32살에 식년시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섰다. 이후 전라도 발포의 수군만호 직책을 맡았다가 북방 국경 지대인 함경도로 가서 여진족 방어를 맡기도 하였다.

 

 - 1587년 9월, 여진족이 기습 침임 하여 발생한 녹둔도 전투에서 필사적으로 싸워 승리했다. 조선인 백성 60명을 구출하여 공을 세웠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고작 수십 명의 보병들로 1,000기의 여진족 기병을 무찔렀다고 한다. 이순신의 무공과 지략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 하지만 조선군 11명이 죽고 160명이 포로로 여진족에 잡혀갔기에 북병사 이 일은 녹둔도 함몰이라고 비판하였으며 이로 인해 이순신은 그해 10월 해임되고 투옥되었다.
 - 이일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참수형에 처할 위기에 놓이지만 선조는 이것이 이일의 모함임을 눈치채고 참수형 대신 백의종군 하도록 명하였다.
 - 선조는 이순신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을 알면서도 당시 조선 최고의 맹장인 신립이 이일과 친하기 때문에 신립의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처벌한 것이라고 한다.

 

 - 1589년 12월에 류성룡의 천거로 이순신은 종 6품 정읍현감으로 임명되고, 이후 1591년 2월에 종 4품 진도군수에 승진하였으며, 부임하기도 전에 종 3품 가리포진 수군첨절제사로 전임되었고, 이 또한 부임하기도 전에 드디어 1591년 이순신은 47세에 정 3품 당상관인 절충장군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발탁되어 임명되었다.

 - 이순신이 녹둔도 전투의 결과로 참수될뻔한 상황에서 그의 억울함을 눈치채고 백의종군하도록 명한 것이나, 이후 파격적인 승진으로 결국 이순신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한 것을 보면 선조의 정치적 판단일 수도 있고 또는 이순신에 대한 강한 신임을 보낸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선조의 이런 결정들이 훗날 사라질뻔한 조선의 운명을 이어가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 그 이후의 이순신의 행적은 7년의 임진왜란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 1592년 6월 이순신 장군의 첫 승전을 알리게 된 옥포해전

 - 1592년 7월 거북선이 첫 출전한 사천 해전

 - 1592년 8월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의 하나이며 세계 4대 해전으로 불리는 한산도 대첩

(역시 복카이센 짱이다.)

 - 이후 음력 9월 1일 부산으로 출정하여 적의 본진이나 다름없는 부산 앞바다의 적선 400척 중 100척을 쳐부수었으며 이때 적선을 모두 부수면 조선에 상륙한 일본군이 도망갈 방법이 없어지므로 일부로 공격을 멈추었다고 한다. 이것이 부산 해전이다. (영화 '한산'의 마지막 장면)

 - 이로서 왜군은 해상 전력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였다.

 

 - 1593년 3월 전면전을 피하는 왜군들을 소탕하기 위한 웅포해전

 - 이후 이순신 함대는 한산도로 진을 옮겼고 조선 3도 수군은 견내량에 방어선을 설정하였다.

 - 1593년 음력 8월 1일 조선 조정은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수하였다.

 - 이후 전쟁은 한동안 교착 상태에 빠졌다. 남해안에 총집결하여 왜성을 쌓고 수비하기에 바쁜 왜군, 전면전보다는 회담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 명나라, 이순신 함대에 조금 더 적극적인 공격을 펼칠 것을 요청하는 조선 조정, 반면 왜군의 유인작전을 대비해 신중히 견내량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이순신 함대.

 

 - 이런 상황들 속에서 <난중일기>에도 그 불량한 행실들이 적나라하게 나오는 원균과의 불화로 인해 이순신 장군은 1597년 4월 정유년에 조선 조정으로부터 통제사직에서 해임되어 원균에게 직책을 인계하고 한성으로 압송되었다. 그해 5월 이순신은 사형을 모면하고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 권용 본진으로 가는 길에 아산 본가에 잠시 머물렀는데 순천에 머물던 이순신의 모친이 아들을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먼 길을 올라오던 중 별세하고 만다.

 - <난중일기> 오디오북을 듣던 중 가장 슬프고 처참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 1597년 8월 정유재란이 발발하고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왜군 수군에서 크게 패배한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조선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다.

이때 조선의 함선은 12척 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이에 조선 조정은 수군을 폐지하라는 명을 받지만 그 유명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는 장계를 올린다.

 

 - 경상우수사 배설로부터 인계받은 전선 12척과 새로 건조한 1척을 합쳐 총 13척의 배로 명량 해협(울돌목)에서 최소 왜적선 130척을 격파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명량 해전이다.

해남 명량대첩비에는 왜적의 배를 쳐부순 것이 500척이며 그 장수마다 시를 베었다."라고 적혀있다.
 - 칠천량 해전으로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조선 수군은 명량 해전으로 정유재란의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켰으며 일본은 명나라에게 외교로 해결하고자 요청하였으나 이순신은 이를 반대한다.

 

 - 1598년 음력 8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주동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사하고 사망직전 철군하라는 유언을 남겨 일본군은 조선에서 철수하게 된다.

 

 - 1598년 음력 11월 조선과 명나라 수군은 노량으로 진군한다. 일본으로 철수를 준비하던 왜선 500여 척 중에 절반에 가까운 배를 격파하였고 달아나던 왜군을 추적하던 중, 날아오는 탄환에 맞아 이순신 장군은 전사하였다.

 - "지금은 싸움이 더 급하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향년 54세에 전사하셨다.

 - 이 노량해전을 끝으로 7년의 임진왜란은 끝이 났다.

 

 오디오북을 들으며 느낀 것들

 - 우리 민족의 위대한 성웅이며 구국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 수많은 역사 자료와 강의와 드라마와 영화로서 접할 때는 정말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워낙 위대한 업적을 세우셨기에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하지만 이번 <난중일기>를 통해 인간으로서 얼마나 많은 고뇌와 책임감의 무게와 점을 치고 꿈해몽을 하는 모습들을 통해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순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 하루하루의 날씨를 빠뜨리지 않고 기록한 내용.
 -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상태를 세세히 기록한 내용.
 - 하루를 보내며 있었던 일들과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눈 기록.
 - 중요한 일을 앞두고 점을 쳐보는 모습, 꿈을 꾼 후 꿈해몽을 하는 모습.

 - 이런 모습들이 정말로 인간적이고 친밀하게 느껴지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들이었다. <난중일기>를 남기지 않았다면 상상조차 못 했을 모습이었을 것 같다.

 

 - 반면에 역시나 성스러운 영웅답게 훌륭한 인품과 자기 통제력, 인내심, 아버지와 자식으로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모습들도 있다.

 - 충(忠) : 나라와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느낄 수 있었다.
 - 의(義) : 왜적에 대한 분노, 원균의 무능과 부정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신분 때문에 벼슬을 한 사람들이 전쟁을 망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신분제 사회의 문제점으로 느껴졌다.)
 - 효(孝) :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자식들에 대한 사랑. 특히 백의종군하는 와중에 어머니를 여의였을 때 이순신 장군의 심정이 어땠을지. <난중일기>에서 그 처참하고 비통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뭘 그리 잘못했길래 이런 가혹한 시련을 주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인(仁) :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 
 - 무(武) : <난중일기>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글이 아마도 활을 쏘았다는 글인듯하다. 그만큼 전쟁 중에도 매일매일 무예를 기르는데 힘쓰고 자기 관리를 했다는 뜻 아닐까 싶다.
 - 예(禮) : 사람을 소홀히 대하지 않는 대신 법도에 어긋나면 칼같이 단호한 성격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 이번에 윌라 오디오북을 통해 <난중일기>를 들으며 생각하고 결심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한번 따라가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 충남 아산의 현충사와 이순신 장군의 묘, 명량 대첩이 있었던 전남 진도와 해남의 울돌목,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첫 해전을 치른 전남 여수, 삼도수군통제영과 제승당 등 임진왜란의 가장 큰 승리가 있었던 한산도 대첩의 경남 통영, 거제 등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일종의 성지순례 같은 느낌이랄까.

 

 - 몇 해 전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친구의 안내에 따라 들렀던 통영의 이순신 공원이 생각난다. 나중에 꼭 한번 다시 가봐야겠다. 이런 역사적 의미를 알고 방문하면 더 새롭게 느껴질 듯하다.



※ 오디오북 완독일 : 2024.01.22. ~ 02.02.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 공감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