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대신 나의 외할아버지
나를 향해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미소 지어준 사람에 대한 기억이 있는가.
봄인지 여름인지, 여섯 살인지 일곱 살인지조차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등산을 좋아하시던 외할아버지는 어느 햇살 따스한 날에 나를 데리고 관악산에 가셨다. 손주를 데리고 산에 가시던 외할아버지는 어떤 기분이셨을까.
하늘나라에 계신 외할아버지에게 그날은 어떤 날로 기억이 될까. 나에게 그날은 나를 무진장 사랑스럽게 봐주시던 외할아버지의 미소로 기억되는 날이다.
외할아버지는 그날 산에 내려와서 집에 가는 길에 중국 음식점에 들러 짜장면을 사주셨다. 알고 보니 이것은 오랜 전통이었던 것 같다. 엄마한테 그날에 대한 기억을 말씀드리니 엄마도 어릴 때 외할아버지와 같이 산에 다녀오시면 항상 짜장면을 사주셨다고 하신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온 가족들이 모여 외할아버지의 앨범을 본 적이 있다. 이제 보니 우리 외할아버지의 눈은 정말 사랑으로 가득 차 있으셨다. 외할머니를 보실 때도 엄마를 보실 때도 손주들을 보실 때도. 그래서 이렇게 오랫동안 추억에 남아있나 보다.
짜장면을 오물오물 먹던 어린 나의 모습, 그 모습을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 보시던 나의 외할아버지, 그리고 버스 창가에서 느껴졌던 따스한 바람들,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던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
인생을 살면서 아픔과 시련이 와도 잘 극복하고 회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님은 이것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한다. 이 분이 쓰신 '회복탄력성'이란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아이들의 특징은 어린 시절 그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어른이 최소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였구나를 새삼 느낀다. 어른이 되면서 많은 걸 잊고 살았다. 어쩌면 사는 게 힘들 때도 지칠 때도 나를 다시 힘이 나게 해 주고 일으켜 세워준 것은 나를 향해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봐주던 그 미소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을 선물해 주신 외할아버지께 감사드린다.
2023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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